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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님' 계의 아이돌 오사카 파이브

  • 대량생산과 품질 저하로 인해 데님의 '고증'이라는 단어가 거의 사라져갈 때쯤 후대에 '오사카의 다섯개의 별' 이라고 부르는 브랜드들의 움직임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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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 한 일본은 수십 년 동안 음악과 영화의 형태로 스며든 미국 문화에 빠져있었다. 이런 일본의 미국 문화에 대한 사랑은 패션에서도 똑같은 영향을 미쳤다. 제임스 딘, 말론 브란도를 보며 IVY 정신에 지친 젊은 소비자들은 투박하고 반항적이며 흥미진진한 미국적인 사고방식을 이해하고 경험하고 싶어 했다. 그렇게 처음으로 일본에 미국의 데님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통이 넓고 길이가 긴 미국 데님은 일본인 체형에 맞지 않아 일본인들은 중고 데님을 자르고 다시 제작하기에 이른다. 그러면서 일본 특유의 장인정신으로 일본인 체형에 맞는 데님을 미국 데님을 통해 만들기 시작한다. 흔히들 고증, 레플리카라는 시장이 이 시기에 성장하고 형성된다. 그러다 70년대에 일본은 '버블'이라 부르는 엄청난 경제적 호황을 누리게 된다. 이 시기의 데님은 인지도 상승과 급증하는 수요로 인해 대량생산과 품질 저하를 가져왔다. 그 결과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청바지가 되었고, 옛 데님의 고증이라는 단어는 거의 사라지게 되었다.







오사카의 다섯개의 별, 오사카파이브의 태동



대량생산과 품질 저하로 인해 데님의 '고증'이라는 단어가 거의 사라져갈 때쯤 후대에 '오사카의 다섯개의 별' 이라고 부르는 브랜드들의 움직임이 시작된다. 대량 생산의 시기에도 옛 데님들을 고증하며 디테일과 장인 정신을 고수하는 브랜드에 대한 니즈는 분명히 있었고, 저품질 데님의 포화 시장에 지친 디자이너들은 손으로 염색하는 과정, 보관, 기계, 시간이 많이 걸리는 직조기술을 통해, 일본의 데님을...정확히는 그들이 생각하는 미국의 데님을 되살리려고 했다. 이에 "오사카 파이브(Osaka five)"라고 불리는 1970년대 오사카의 본거지를 둔 5개의 데님 브랜드는 과거의 데님을 살리기 위한 여러 방법들을 시도했고 자신들만의 방식을 통해 소개되어지고 있다.  요즘 국내에서도 반응이 좋은 각 브랜드들을 간단하게 한번 소개해보려한다.





Studio D'Artisan : Since 1979 (스튜디오 다티산)





“Reconstruction of great old things”


프랑스에서 무역을 배운 디자이너 시게하루 다가키(Shigeharu Tagaki)가 1979년 스튜디오 다티산(Studio d'artisan)을 설립하며 '오사카 파이브(Osaka Five)'의 시작을 알린다. 그는 프랑스의 작업복과 60년대 후반과 70년대 초반, 일본을 휩쓴 미국 청바지 열풍에 영감을 받아 오래된 'Toyota G-3' 셔틀에 빈티지 데님을 재현하기 시작한다. 초창기에는 데님 브랜드라는 인식보다는 복제하는 브랜드로 간주 됐다고 하는데, 그때 당시 빈티지 제품을 디자인 참고용으로 사용하는 건 흔한 일이었다고 한다. 여기서 스튜디오 다티산이 다른 경쟁사들과 차별화한 것은 복제가 아닌 아카이브 제품에서 영감을 얻어 독창적인 디자인에 집중하기로 한 것.




Studio d'artisan 의 디렉터 Fujikawa San



인디고 셀비지 데님과 부자재가 이 브랜드의 아이덴티티이며, 이는 80년대의 Acid washed denim과 무겁고 Pre-shrumk(방축 가공)이 된 제품의 인기와는 대조된다. 그때 당시, 다티산의 제품이 처음 발매되었을 때 2만 9천엔이라는 높은 리테일로 인해 원성을 사기도했다. 당시 일본 대학 졸업 후 평균 초봉은 연간 20만~25만 엔이었던 걸 생각하면, 상당히 비싼 가격이긴 한 것 같다. 그리고 그 당시 대량생산이 되고 있는 데님의 가격은 6천~7천엔 사이였음을 감안했을 때 스튜디오 다티산 제품들은 젊은 소비자들에겐 부담이었으며, 사치품의 대상이 될수밖에 없었다. 높은 리테일 가격이지만 그들은 퀄리티에 더 신경을 써 그 가격대 시장에서 합리적인 제품임을 증명하려했다. 





오카야마의 니혼 멘푸라라는 회사에서 1986년 출시된 스튜디오 다티산의 D0-1 데님은 빈티지 27인치 셔틀 직기에 짜인 원단을 *로프 염색(Rope dyeing)해 힘들고 꼼꼼하게 장인정신의 마음가짐으로 만들어 출시한 제품이다. 이 덕분에 90년대 들어서며 스튜디오 다티산 데님은 그 퀄리티와 장인정신으로 인해 큰 인기를 얻었고, 데님 열풍의 한 가운데 있었다. 오늘날 스튜디오 다티산은 그들은 계속해서 다양한 고품질 데님을 생산하며 일본을 대표하는 데님 브랜드 하나가 되었고, 일본 데님의 기준을 새롭게 세운 것으로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있다. 현재 아쉽게도 창립자 시게하루 다가키(Shigeharu Tagaki)는 1995년에 자신이 설립한 회사를 떠나며 새로운  대표인 후지카와(Fujikawa) 현재  명맥을 이어 나가고 있다.


* Rope dyeing 염색기법은 수백 개의 실 꾸러미를 밧줄(Rope) 형태로 만들어 염료가 들어있는 통에 돌려가면서 담갔다가 빼서 건조하고, 또다시 담갔다가 빼서 건조하는 방식으로 반복적으로 하면서 원하는 색감을 만들어 내는 방법이다.




"청바지를 고객에 넘겨 주면 

그것이 이야기의 서막 이라고 믿습니다."

- Fujikawa san




Denime : Since 1988 (드님)





The Real Basic


오사카 파이브의 두 번째 멤버 '드님(denime)'은 1988년 *하야시 요시유키(Yoshiyuki Hayashi)에 의해 설립 되었다. '드님'의 뜻은 프랑스 남부 님 지역의 직물인 서지 드 님(Serge de nimes)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일본 효고(현 고베 시)에서 설립 되었지만, 지역 자체가 오사카와 가까워 오사카 데님 붐에 끼여있는 모습이다. 드님은 원단, 페이딩, 바느질, 부자재, 착용감 수준에서 우월한 데님 메이킹을 고집하며 옛 데님의 분위기를 충실히 전달한다는 콘셉트로 이제는 찾기 힘든 50~70년대 미국 숨은 명작들을 레플리카 데님으로 고증했던 브랜드다.



* 하야시 요시유키는 1956년 12월 11일 히로시마 현 후쿠야마시 출생, 긴키대학 졸업, 미국 문화와 청바지에 대한 애정에 힘입어 UFO Company에 입사하여 판매 및 기획을 하고 이후 드님을 설립했다. 현재는 레졸루트 데님의 디자이너이다.




드님이라는 브랜드의 중심에는 하야시 요시유키(Yoshiyuki Hayashi)가 있는데 그는 1950년대 데드스톡 데님(DeadStock Denim)을 실타래 수준으로 해체하여 면의 제조국, 실 번호, 색상, 염료, 직조실 수를 세밀하게 조사함으로써, 1988년 DenimeXX Type을 만들게 된다. 한국에도 레졸루트 때문에 몇번 오셨기에 이미 잘 알고계실 것 같다. 그는 처음에는 144개의 데님만 만들어졌으며, 성공적인 페이딩을 만들기 위해 프로토타입 제작으로부터 XX Type 생산을 시작하는 데 6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한 브랜드가 시즌을 선보이는데 6개월 정도를 준비한다는 건 엄청 섬세하게 준비를 했단 소리다.



90년대 초반에 출시된 드님 데님은 하야시가 오리존티(Orizzonti)사에 있던 시절이었는데, 드님의 팬들 이야기에 따르면 이 시기에 생산된 데님이 품질면에서 가장 좋다고 한다. 하지만 회사의 실적 악화로 이후 2005년 신스사(Shins Inc)에 인수, 2009년 위고(Wego Inc) 사에 인수 당하며 불안한 상태를 겪게된다. 이런 상황이다보니 드님은 하야시상에게 여러가지로 매우 엄격해 졌고, 원하는 것을 만들 수 없었던 그는 새로운 데님을 만들기 위해 퇴사 후 2010년 SB PLANNING.CO.LTD 계획 하에 오늘날 국내에서도 많이 입고있는 레졸루트(Resolute)를 시작하게 된다.




여담으로 하야시상이 드님에 종사한 것은 오리존티 다음 신스사까지 이므로 데님 매니아 사이에서는 해당 시기 제품이 꾸준하게 인기를 얻고 있다. 그러니 빈티지 숍에서 드님을 만난다면 해당시기의 제품인지 체킹해보도록 하자. 



Evisu : Since 1991 (에비스)






"UNCHANGEABLE"


오사카 파이브의 브랜드 중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데님 중 하나인 'EVISU'의 수장 야먀네 히데히코(Hidehiko Yamane)는 동시대 설립자와는 다른 행보를 보여줬던 사람이다. 재단사 출신이자 리바이스 데드스탁 일본 수입업체인 Lapine의 매니저였던 야마네는 1980년대 후반 Levi's와 다른 브랜드의 품질에 대한 불만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빈티지 데님에 관한 연구를 시작했고, 빈티지 데님에서 발견되는 퀄리티를 재현하기 위해 자신만의 방법으로 공부하며 부단한 노력을 했다. 1991년 회사를 그만두고 당시 Lapine에서 일할 때 부하직원이었던 지타 미키하루(Mikiharu Tsujita)와 자신의 청바지 브랜드를 설립하기로 결정했고, 그 결과 현재 일본에서 가장 유명하고 영향력 있는 청바지 브랜드 중 하나인 에비스가 탄생하게 된다.






에비스(Evisu)라는 이름은 일본의 신앙 칠복신 가운데 하나이며, 보통 낚싯대와 도미를 든 모습으로 묘사하고 있다.(또, 돈의 신이라고도 부른다) 야마네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5가지 요소인 맥주, 여자, 골프, 낚시,돈 중 낚시와 돈을 묘사해 에비스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에비스(Evisu)라는 네이밍은 초창기에는 'Evis'라고 사용했었는데, 이는 Levi's에서 'L'을 빼 위트있게 네이밍을 지은 것 같다. 그의 이러한 유머 감각은 백 포켓에서도 만나볼 수 있는데, 'カモメ(카모메)'라고 불리는 에비수의 시그니처 시걸 로고는 야마네가 장난으로 그렸다고 하며, 처음에 그 제품을 사람들이 사줄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당시 인기있는 일본의 잡지회사 'Mono'가 우연히 에비스를 발견해 소개하자 큰 인기를 끌며 매출이 급상승했다. 에비스는 이후 1992년까지는 *지타와 시오타니형제와 함께 성장했지만, 그들은 각자 자신들이 생각하는 청바지를 보여주고자 에비수를 떠나 새로운 브랜드를 설립한다.


풀카운트의 창립자 츠지타 미키하루와 웨어하우스의 창립자 시오나티 형제를 일컫는다.





2000년대 야마네는 The Hub의 설립자 Peter Caoplowe(피터 캐플로우)와 함께 에비스의 독특한 청바지를 소개하며 전 세계적으로 붐을 일으켰다. 특히 아시아, 이탈리아 및 영국에서는 에비스의 만화 같은 로고를 받아들임으로써 고급 데님 브랜드가 다른 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 했다. 에비스의 성공 요인은 일본 이미지를 유지하면서 브랜드를 각자의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게 했다는 것이다.


에비스가 전 세계의 주목을 받던 2000년대 중반, 월비통상이라는 한국 회사가 연간 4억 5천만 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리며 에비스를 판매했다.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유년 시절 그 '에비수'이다. 유사 디자인을 넘어 복제에 가까운 제품이지만 월비가 에비스 재팬보다 한국에서 상표등록을 먼저 해버리는 바람에 에비스가 소송에서 패소했다. 이후 에비스는 2010년 David Pun(데이비드 푼)이 파산 직전의 에비스를 인수해 글로벌 브랜드로 변모시킨다. 데님 세계에 큰 획을 그었지만 현재는 모호한 에비스. 아쉬운 마음이 가득하지만 재팬 라인은 아직 야먀네의 유산 Evisu 2000이 남아있다.(Evisu jp을 검색하면 만나볼 수 있다) 뿌리를 잃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과 역사를 가진 브랜드가 다시 부흥하는 그날이 오길 바란다.





FullCount : Since 1993 (풀카운트)



“Creating a jean that feels so good you don’t want to take them off”


야구에서 두개의 스트라이크와 세개의 볼인인 상태를 나타내는 오사카 파이브의 네 번째 브랜드 '풀카운트'. 1966년 오사카 출신인 츠지타 미키하루는 패션학원이나 데님 디자인 학교를 다니지 않았지만 빈티지 의류로 패션을 공부했다. 1989년 Lapine*에서 근무를 시작, 1990년 데님을 만들기 시작했고, 1993년 "너무 기분이 좋아서 잠자리에 들 때까지 벗고 싶지 않은 청바지"를 만들고자 풀카운트를 설립했다. 그때 그의 나이 26살 때 일이었다.


*Lapine에서 청바지를 만들고 그다음 에비스에서 일하다 이후 Fullcount를 설립한다.






Zimbabwe's cotton


시계와 빈티지 자동차를 감상하는 방식과 견줄 만한 새로운 가치관을 의류에 담고 싶어 했던 츠지타는 사람들이 의류를 소중히 여기고 오래된 청바지의 아름다움을 느꼈으면 했다. 그래서 풀카운트 제품은 면화 중에서도 뛰어난 품질로 유명한 짐바브웨 면화를 사용한다. 이 면화의 특징은 기계에 의존하지 않고 대부분의 작업을 사람의 손에 의해 수확한다는 것이다. 가늘고 균일한 길이의 것을 수확하며 한 올 한 올의 섬유 길이가 길기 때문에 초장면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일반 섬유길이는 26~27mm인데, 초장면의 길이는 최소 34에서 최대 40mm까지도 가능하다.) 섬유길이가 길기 때문에 이음새가 적고 여유 있게 꼬인 견고한 얼룩실*을 만들 수 있으며 가볍고 피부에 닿았을 때 부드러우며 신축성이 뛰어나다풀카운트는 1940년대 미국에서 생산했던 데님의 소재를 대체하기 위해, 최고급 소재 짐바브웨 면화 100% 사용해 입기 쉽고 내구성이 뛰어난 바지를 실현시켰으며, 기존에 "무겁고 단단한", "입기 힘든" 청바지의 이미지를 "무거울수록 튼튼하다."라는 인식으로 각인 시켰다.


*얼룩실이란 손으로 방적하는 것처럼 실의 가는 부분이나 굵은 부분을 의도적으로 만들어 낸 실이다.






풀카운트의 청바지는 원단 뿐만 아니라 봉제 실에서 까지 섬세함을 느낄 수 있다. 보통 청바지에 사용되는 폴리에스테르 실은 데님 원단이 탈색이 되어도 스티치는 원래의 상태이기 때문에 싱거운 느낌이 들 수 있다. 그래서 풀카운트 데님의 제품은 빈티지 청바지 처럼, 원단과 실의 색상이 똑같이 경년변화를 느끼게 하는 것을 고집하기 위해 면 실을 쓴다. '면 실을 써서 내구성이 약하다' 라는 생각을 할 수 있지만, 1벌의 청바지가 만들어질때 굵기가 다른 12개의 실을 사용하기 때문에 그렇진 않다고 한다. 


알다시피, 청바지는 처음에 작업복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다 60년대 청바지가 패션 아이템으로 바뀌기 시작했고, 미 동부 해안, 영화배우들이 입은 청바지가 점점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고 패션의 영역으로 이동하며, 체형에 맞게 입거나, 실용적인 디테일은 대중들에게 외면 받기 시작했고, 그러다 보니 과거의 청바지를 찾기 시작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그들은 옛날의 미국의 '튼튼한 것 일수록 좋다'고 했던 것과 같은 청바지를 재현하기 위해 이를 재봉틀, 바늘, 데님을 만드는과정에 녹여낸다. 풀카운트는 30년동안 청바지를 제외한 다른 품목에서는 매 시즌마다 새롭게 뭔가를 보여 주기도 한다. 하지만 청바지 만큼은 변하지 않는다. 의류 생산이 값싸고 빠른 노동력에 의해 지배되는 시대에 과거를 지키려는 풀카운트를 더 응원해야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Warehouse : Since 1995 (웨어하우스)






The never-ending pursuit of detailing.


1973년에 태어난 쌍둥이 형제 시오타니 케니치(Kenichi)와 시오타니 코지(Koji)는 1980년대 셀비지가 없는 Levis 501을 접하며 패션 스타일로  청바지를 입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오사카의 빈티지 의류매장 Lapine에서 에비스 창립자 야마네 히데이코를 만나 빈티지 청바지에 대해 알게됐고 (데님은 세탁된 후에 뒤틀릴 수 있다는 사실과 몇 가지 기본적인 지식을 알려주었다고 한다.) 이들은 훗날 Evisu Jeans에서 야마네와 함께 일하게 된다. 이후 경험을 쌓은 시오타니 형제는 에비스에서 나와 1995년 오사카 파이브의 마지막 조각 웨어하우스(Warehouse)라는 브랜드의 시작을 알리게 된다.





Warehouse의 철학은 빈티지 의류와 역사적인 워크웨어에 중점을 두지만, 시오타니 형제는 브랜드를 성장시키기 위해 복각하는 걸 뛰어넘어 과거의 생산방법과 직물을 오리지널 의류에 적용하기로 결정했다. 그 첫 모델이자 브랜드의 대표 모델인 Lot.1001xx로 데님 산업에 뛰어들었다. Lot.1001은 1950년대 Levis의 501xx 청바지를 그대로 반영한 루즈 스트레이트 핏 데님으로, 코퍼 리벳(copper rivets), 아이언 버튼(iron buttons), 백 포켓 탭(red rayon pocket tab), 백 포켓 아크레이터(curved rear pocket arcuates) 같은 시대적 디테일을 통해 빈티지 데님에 대한 시오타니 형제의 열정을 담아냈다. 고증에 대한 시오타니 형제의 시각은 고고학자의 입장과 매우 유사하며, 작업하는 방식을 비유하자면 공룡이 현대에 다시 살아나는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과 같다고 이야기 할 수 있겠다.




웨어하우스의 청바지에 대한 철학도 남다르다. 싸고 대량 생산되는 청바지에 사용되는 *오픈-엔드(open-end) 스피닝 실 대신, *링 스피닝 (Ring Spinning)으로 만들어진 실을 사용한다. 오픈 엔드(open-end) 스피닝 실로 만들어진 청바지는 생산성이 높고 저렴하지만 원단이 튼튼하지 않고 한번 늘어나면 회복하기 힘들다 그리고 탈색효과도 낮은 편이다. 반면 링 스피닝 (Ring Spinning) 실은 불규칙하지만, 단단히 꼬여있고 세탁후에 탈색효과는 잘 나오는 편이다. 멤피스, 애리조나, 테네시에서 엄선된 면사 혼합물을 Toyoda G3 셔틀 직기로 사용하며, G3가 지속적인 관리도 해줘야 하고 까다롭지만 그럼에도 사용하는 이유는 20세기 초중반 데님처럼 러프한 질감을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코튼 원단을 직조하기전 원사(yarn)를 만드는 방적(솜을 실로 만드는 방법)방식은 링 스피닝 (Ring Spinning) 방식이었다. 대부분 수작업으로 진행하던 링스피닝 방식은, 1828년 링스피닝 머신이 개발되어 대량생산이 가능해졌고, 1970년대까지 계속 되었다. 이후 생산성을 향상시킨 새로운 방적기술이 1963년 체코슬로바키아에서 개발되면서, 방적은 오픈엔 (Open-end)스피닝 방식으로 교체되기 시작한다. 당시 많은 원단 업체들이 기존 링스피닝 기계에서 오픈엔드 기계로 대체하였다고 한다.






웨어하우스는 청바지의 황금기 제조법을 고수하고 샌퍼라이징(방축가공)을 하지 않다 보니 페이딩 및 주름을 포함한 세부사항이 다른 데님 제품들과 다르게 보인다. 새로 만든 제품이지만 품질은 마치 데드스탁 제품 같으며 빈티지 숍에 걸려 있을 법한 청바지의 모습을 나타낸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편해지며 나만의 데님으로 변하게 된다. 시오타니 형제가 처음 접했던 501의 향수를 웨어하우스의 제품으로 직접 느껴보길 바란다. 



초기 빈티지 데님의 고증을 되찾으려는 개개인의 꿈과 노력 덕에 오사카파이브와 지금의 일본 데님의 명성이 생겨났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의 관심을 사로잡는 청바지는 점점 적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오사카 파이브와 같은 브랜드들이 그 명맥을 이어갈 수 있도록, 그리고 제 2의, 제 3의 오사카 파이브가 빛을 볼 수 있도록 꾸준한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Editor. Mr.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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