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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 근대 역사속 패션 스타일에 관해 Vol.1

  •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70년대 빔즈와 뽀빠이까지, 미국을 영향을 그토록 많이 받았던 일본 패션 역사 연재물 1편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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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카지’ 패션에 관심이 높은 사람은 물론이고, 그다지 관심이 없는 사람들조차도 한번쯤은 들어본 용어일 것이다. ‘아메리칸 캐주얼’의 일본어 발음인 아메카지는 2010년대 초반, 국내에 들어와서 선풍적인 인기를 끈 다음 하나의 스타일로 자리를 잡았다. 우리나라에서는 뒤늦게 사용되기 시작한 단어지만, 일본에서는 이미 20여년전인 1980년대 말부터 광범위하게 사용 되고 있었다. 오히려 일본은 그보다도 전인 1940년대부터 아메리칸 패션을 탐구해 왔다. 일본은 왜 그리고 어떻게 다른 나라도 아닌 미국의 패션을 탐구해왔고 어떤 식으로 재해석해 왔는지 전반적인 일본의 패션 역사와 함께 알아보고자 한다.



POST WAR Ⅱ


1945년 세계2차대전이 끝난 후 패전국가인 일본은 혼란 그 자체였다. 전쟁으로 수많은 전쟁으로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집을 잃었다. 먹을 것도 충분하지 않았던건 물론이며, 한국에서 수탈하던 쌀이 끊어진 상태에서 하필이면 대흉작까지 찾아왔다. 따라서 남성은 국민복과 복원복 여성들은 몸빼(우리나라에서 말하는 몸빼바지의 그 몸빼의 유래)등 전시 때에 유용했던 획일화된 옷들을 입을 수 밖에 없었다. 문화나 패션은 고사하고 생존이 최우선이였던 시기였다. 하지만 딱 1년 후인 1946년, 가지고 있던 기모노나 기본적인 옷들을 활용하여 미국의 패션을 따라 만든 각종 스타일북이 폭발적으로 팔리기 시작하였다.



전후 시대의 몸빼바지와 스타일북



또한 남성들 사이에서는 양재 붐이 일어나 너도 나도 양복과 정장을 사입기 시작했다. 따라서 전쟁에 의해 자활이 끊긴 젊은 여성들은 신부수업 등으로 양재학교에 몰리고, 일본은 본격적인 양재 문화의 부흥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전후 황폐하고 비참해진 일본에게 미국의 풍요로운 이미지는 일본국민들에게 동경심을 심어줄 수밖에 없었다.



전후 당시 일본 여성들의 패션




팡팡걸


당시 패전국이였던 일본에는 미국이 상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본은 정부주도하에 ‘팡팡걸(팡팡걸의 어원은 영어나 프랑스어가 아니고 중국어다. 중국에서 매춘부를 '팡팡눌랑(伴伴女郞)'이라 불렀는데, 여기서 '팡팡'이 나왔고, 뒤에 영어 '걸(Girl)'이 붙었다.)’이라는 단체가 결성되었다.



미군들과 함께하고 있는 팡팡걸



일본 경제를 재건하겠다는 대의를 품었다하는 이 팡팡걸은 RAA(Recreation and Amusement Association : 레크레이션 및 오락협회)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이 단체의 일본명은 ‘특수위안시설협회’였다. 그리고 그녀들은 미군들을 상대로 달러를 벌어들이기 시작했고, 일본 경제를 회복시키는데 상당한 일조를 했다고 한다.


그녀들은 암시장에서 거래되는 미제의 화려한 원색의 옷을 걸치고 머리는 펌을 했으며, 빨간 립스틱을 칠해 미군의 이목을 끌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들을 바라보는 일본 국민들의 머릿속에 그녀들만의 화려함이 주목 되었고 그렇게 그녀들은 앞서 얘기한 일본의 양재 붐과 스트리트 패션의 초석이 되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장사꾼들은 벌어들인 달러를 팡팡걸에게 건네고 이들은 자신이 접촉하던 미군을 이용해 PX의 물품을 사 오도록 했다. 결국 팡팡걸은 미군 물자를 빼내는 물꼬와 비슷한 역할을 했던 셈이다. 그렇게 미국의 군수물자, 또는 미군의 옷을 물려받을 수 있었던 그녀들 덕분에 밀리터리 스트리트 룩이라는 패션이 여기서 시작되었으며 전반적인 전후 패션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태양족


이렇게 2차세계대전 이후, 폐허가 된 일본을 아주 빨리 일어서게 한 것은 뜻밖에도 6 · 25 전쟁(한국 전쟁)이였다. 한국전쟁 특수로 인해 미국에 군수물자를 생산 및 납품했고 여러 기지를 건설하는 결과 끝에 10년도 되지 않아 전쟁의 피해를 모두 회복했다. 경제 안정화를 되찾은 일본에서는 ‘태양족(太陽族)’이라고 일컬여지는 젊은 무리가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태양족은 1950년대 일본에서, 전쟁 전의 가치관이나 질서를 거부하며 자유분방한 사고방식을 보인 젊은 세대를 이르던 말로서 56년 출간된 베스트셀러 소설 <태양의 계절>에서 유래했다. 



영화 <태양의 계절>과 당시 실제 태양족의 모습


태양족은 1950년대 미국 스타일의 쾌락주의에 자신을 내던지며 무질서와 방종으로 일관하곤 하였으며, 소설의 주인공인 ‘이시하라 유우지로오’스타일의 하와이언셔츠에 선글라스, 스포츠 머리를 하고 도쿄 쇼우난 해변을 배회하며 방탕한 생활을 즐겼다. 하와이언셔츠에 선글라스 등 미국식 리조트웨어를 입고 도쿄 소냔을 배회하던 이 태양족들은 비도덕적인 모습으로 인해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았으나, 동시에 또래 젊은이에게 우상화가 되기 시작했다. 추종자들에게 영향을 끼친 이 태양족의 패션이 바로 일본 스트릿 패션의 시작이라고도 할 수 있다.




VAN JACKET




전후 일본 경제 호황과 더불어 생존의 시대에서 물질적 풍요가 점차 대두대던 1960년대, 일본패션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VAN JACKET 이라는 브랜드가 등장하게 된다. 60년대 가게 소득은 증가했고 패션과 의류의 관심이 자연스럽게 늘어가는 시장의 흐름을 감지한 이시즈 켄스케는 의류업계의 경험과 글로벌 마인드를 바탕으로 1951년 오사카에 작은 상점을 열어 브랜드를 시작했고, 1954년 반자켓(VAN JACKET)이라는 리브랜딩 된 브랜드로 아이비 패션을 소개하면서 60년대 일본 패션의 부흥을 일으키게 된다.


그는 패션에 관심 있는 남성들을 여성스럽고 괴짜 취급하던 사회 풍조를 계몽시킨다는 일념으로 MEN’S CLUB, HEIBON PUNCH 등의 패션잡지에 원고를 썼고, 라디오에선 IVY STYLE을 전파하며 마케팅에 노력을 쏟았다. 특히 일본 사회에서 서양 의복을 올바르게 입어야 한다는 법칙을 짧고 굵은 어휘로 만들어냈는데 이것이 오늘날 우리에게도 익숙한 TPO(Time, Place, Occasion)이다. 그 결과 도쿄 청년들 중심으로 VAN JACKET의 아이비리그 스타일이 소비되기 시작하면서 도쿄 긴자의 미유키 거리를 활보하는 ‘미유키족’이라는 단어가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반자켓 광고 / 멘즈클럽에 소개된 IVY STYLE



미유키족

1964년, 주말의 긴자(銀座), 미유키 거리에서 자주 모였다 해서 유래된 이 사람들은 주로 미국의 캐주얼 의류를 취급하는 일본 의상 메이커 밴에서 나온 패션에 심취한 대학생들을 일컫는 말이다. 이들은 VAN 매장 앞에 모여 옥스포드 다운 버튼 셔츠에 3버튼 재킷, 롤업한 카키 치노팬츠를 입고 페니로퍼를 신으며 한손엔 반자켓의 종이백을 들고 다녔는데 미국의 아이비룩과는 사뭇 다르게 매우 슬림한 룩이다. 당시 미유키족의 스타일이나 태도는 일본에서 가장 비싼 땅인 긴자에서 빈둥대는 모습으로 기성세대에게 비춰 졌고 1964년 동경올림픽을 맞이하여 거리 정화 운동의 표적이 되었다. 그렇게 미유키족은 꽤 지속된 것처럼 보이나 실제적으로 1964년 5월경 등장하여 9월경 종적을 감추어 버린 스타일이다.
 


거리를 활보하는 미유키족



이런 미유키족으로 인해 실추된 IVY STYLE의 이미지를 환기시키고 기존의 추구했던 East Coast 명문대생 이미지를 고수하기 위한 대책이 필요했다. 1964년 도쿄올림픽 국가대표 선수들의 유니폼 제작으로는 부족함을 느낀 켄스케는 아이비리그의 실제 명문대생의 스타일을 촬영하겠다는 결정을 내렸고 1965년, 5인의 아이비리그 원정대를 꾸려 미국으로 향했다.



TAKE A IVY



TAKE A IVY 속 사진들



부푼 기대를 안고 도착한 아이비리그. 하지만 그들의 예상과는 달리 학생들의 스타일은 낡은 티셔츠에 반바지, 샌들 등 패션에 관심이 없는 것 처럼 너무 편안하고 수수했다. 당시 미국은 베트남전으로 인한 반전시류가 형성됐고 또한 영국밴드들의 British Invasion까지 본격화되며 히피문화라는 서브컬쳐가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켄스케는 자신이 일본에 유행시킨 IVY STYLE에 정당성을 제공해야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몇몇 대학교 홍보실의 도움을 빌려 교회에서 나오는 학생들이나 교수 등 최대한 IVY 이미지에 가까운 사진과 영상들을 촬영하였다. 이렇게 완성된 것이 바로 오늘날 아이비 & 프레피의 교과서로 불리우게 되는 ‘TAKE A IVY’이다.


일본으로 귀국한 켄스케는 영상과 서적을 대중에게 발표했고 결과는 성공적이였다. 마케팅은 적중했고 미유키족으로 인해 사회 전반적으로 가지고 있던 IVY STYLE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완벽히 해소시켰다. 당시 TAKE A IVY의 영향으로 IVY STYLE은 청소년부터 성인까지 유행을 하게 되며 VAN JACKET의 매출은 현재가치로 1000억원을 돌파할 정도로 성장했다. 역설적이게도 VAN JACKET을 경험한 사람들은 어느시점부터 더욱 더 본질적인 IVY STYLE에 대한 갈증이 깊어졌다. 재해석 혹은 카피 제품이 아닌 실제 미국인이 입고 있는 Brooks Brothers 그리고 J.Press를 찾기 시작하면서 1976년부터 매출은 주춤대기 시작했고 결국 1978년 VAN JACKET은 파산신청을 하게 된다. 그렇게 일본패션의 한 획을 그었던 VAN JACKET도 역사속으로 잊혀지게 되었다.




후텐족


60년대 후반. 앞서 얘기한 미국에서 베트남전 반대 분위기에서 자유와 평화를 슬로건으로 하는 히피문화가 대유행하게 되었고, 비슷한 시기 일본에서도 이런 미국의 히피문화를 따라하는 후텐족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후텐족'(フーテン族)들은 주로 신주쿠역 근처 광장에서 시너를 흡입하고 몽롱해진 채로 여기 저기 기웃거리거나, 혹은 길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이상한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댄다는 이미지가 있었다. 밴드 캔의 보컬이었던 다모 스즈키가 후텐족 출신으로 유명하다. 후텐족과는 조금 다른 일본의 ‘히피족’이라는 또 다른 무리가 있었다. 후줄근하고 고립돼 있고, 재즈를 좋아하는 후텐족과는 달리 일본의 히피족은 보헤미안의 정체성을 미국에서 직접 들여왔다. 히피족은 미국 록을 듣고, 교외의 집단 농장으로 이주하기를 꿈꿨다. 하지만 후텐족은 신주쿠 바깥 어디로든 갈 계획이 없었다. 이런 히피족, 후텐족들의 관심요소는 바로 데님팬츠였다. 이 두 무리는 데님팬츠의 유행에 불을 지폈고 원래 교복사업을 하던 마루오클로딩은 칸톤밀스의 데님원단과 오렌지 스티치 실, 스모빌의 리벳, 탈론의 지퍼를 이용한 최초의 일본 데님팬츠 브랜드 ‘칸톤’을 런칭하였다.





1963년 데님을 이용해 미국풍 청바지를 최초의 일본데님브랜드 '칸톤'/ LEE 재팬


이후 본격적으로 코지마지역을 생산의 본고장으로 삼은 마루오클로딩의 ‘빅존’, 가네와클로딩(에드윈 청바지 재봉업체)의 ‘존불’이 연달아 청바지 시장에서 히트를 쳤다. 이후 오랫동안 데님을 수입해온 ‘호리코시’는 72년 리(LEE) 재팬을, VAN JACKET의 섬유 제조업체인 도요보와 무역회사 미쓰비시가 랭글러(WRANGLER) 재팬을 만들게 되면서 비로서 일본 데님팬츠의 춘추전국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이렇게 데님팬츠가 전국적인 유행을 타면서 60년대 아이비룩에 이은 아메리칸 웨어가 서서히 일본에 확산되기 시작하였다.




헤비듀티



1977년 처음 출간된 헤비듀티(일본판) / 2018년 국내 출간된 한국어판 헤비듀티



일본의 남성잡지 맨즈클럽의 일러스트레이터인 ‘고바야시 야스히코’는 77년  ‘헤비듀티’라는 책을 출간했다. 이 책은 ‘맨즈클럽’에 ‘‘진짜’를 찾아 떠나는 여행;헤비듀티 서베이’, ‘헤비아이당 선언’ 등의 연재물을 보강해 엮은 것인데 튼튼하고 잘 만들어진 진짜의 아메리칸 아웃도어 제품 소개를 넘어 생활방식과 의복규칙에 대한 안내까지 포함된 책이다. 그저 ‘튼튼한’이라는 뜻의 일반 명사에 지나지 않았던 ‘헤비듀티(HEAVY DUTY)’라는 용어를 일본패션계에 정착, 확산시킨 ‘고바야시 야스히코’의 ‘헤비듀티’ 역시 일본 패션역사에서 꼭 집고 넘어가야하는 부분이다. 



70년대 중후반



BEAMS와 POPEYE


70년대 중반을 넘어서는 앞서 이야기한 헤비듀티처럼 조금 더 활동적인 아메리칸 웨어 및 문화가 일본에 소개되었다. 이전 글에서 자세하게 소개했던 아메리칸 라이프 스타일샵이라는 컨셉의 셀렉샵 빔즈가 76년 오픈 했고 곧 바로 남성잡지 ‘뽀빠이’가 창간하는데 이는 ‘시티보이’들의 라이프스타일, 패션, 문화, 여행 등을 제안하고 담아내는 잡지이다. 특히 스케이트 문화, 조깅 등을 매우 심도있게 소개했는데 40년이 지난 현재에도 스케이트보드는 뽀빠이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아이템이다. 뽀빠이를 시작으로 일본의 70년대는 60년대보다 좀 더 캐주얼하고 활동적인 아메리칸 스타일의 막이 열리게 된다.



뽀빠이 매거진 속의 스케이트보드 무드의 이미지들


이렇게 전후부터 70년대까지의 일본 패션 역사에 대해 알아보았다. 미국에게 패전한 일본은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의 풍요로운 이미지를 동경했고 그 결과 패션 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대단히 많은 미국의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었으며, 이렇게 아메카지는 시작하게 된 것이다. 다음글은 80년대 이후의 일본 패션에 대해 다뤄보는 것을 미리 알리며 이글을 마무리 짓겠다.






Editor. 괜차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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