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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alenciaga의 아카이브, 그리고 미래

  • 뎀나 바잘리아가 전개하는 발렌시아가라는 럭셔리 하우스에 관한 조명 그리고 그 파급력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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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후 가장 큰 성장 가능성을 보유하고 있는 럭셔리 하우스는 어디일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하우스는 여러 질문에 답변해야 한다. 몇 가지 규격화된 요소가 존재한다.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는가? 향수 등 코스메틱 요소가 브랜드 역사에 존재하는가? 그리고 의상에 대한 확고한 아카이브를 가지고 있는가? 그리고 현대의 컬렉션이 과거의 유산과 어우러질 가능성과 파급력을 가지고 있는가.






어려운 네 가지 질문을 모두 통과할 수 있는 브랜드가 여기 있다. 아마 1895년 세상에 태어나 1937년 파리에 그의 매장을 오픈할 때까지. 스페인 태생의 청년은 본인이 세상을 떠난 이후 100년이 넘는 시간을 지나 이 브랜드가 가장 핫한 럭셔리 브랜드가 될 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의 이름은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 그리고 오늘 이야기할 브랜드가 케링 Kering 그룹의 기대주 발렌시아가 Balenciaga다. 






2001년 구찌 Gucci를 소유한 럭셔리 그룹 케링 Kering의 일원이 된 발렌시아가 Balenciaga.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브랜드라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지만, 이 브랜드가 어떤 행보를 통해 지금의 발렌시아가로 변했는지 아는 사람은 소수다. 1917년, 발렌시아가 Balenciaga라는 이름으로 스페인에 탄생한 브랜드가 2020년 미래를 그려나가고 있을까. ​이들이 나아가는 방향에는 럭셔리 패션 하우스가 기획하는 2020년대의 성장 전략과 브랜드 혁신의 방향성이 담겨있다.







발렌시아가 Balenciaga의 시작은 1917년. 스페인 산 세바스티안 San Sebastian에서 시작된다. 당시 대부분의 브랜드가 그러하듯, 발렌시아가의 유명세는 스페인 왕실을 위한 옷을 제작하면서부터다. 특별히 패션을 전공하지 않고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든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는 왕실과 귀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그의 이름을 건 부티크는 20년 사이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까지 확장하게 된다. 스페인에서 승승장구하던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는 1936년 시작된 스페인 내전을 피해 프랑스 파리로 무대를 이동하게 된다. 그가 무대를 파리로 이동하게 되면서 발렌시아가의 이름은 스페인을 넘어 유럽 전체로 퍼져 나가게 된다.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의 초창기 디자인은 혁신성과 새로움으로 패션계를 사로잡았다. 그는 기존에 없던, 심플함과 담대함을 넘나드는 실루엣을 선보이며 브랜드의 이미지를 확고하게 다졌다. 1937년, 유럽 전역이 전쟁으로 인해 황폐한 분위기 속에서도 심플한 디자인과 짧은 소매를 연계시킨 'Square Coat'를 선보였고,  1950년대에는 절제된 분위기 속에서도 풍성한 볼륨과 위트를 더한 커팅을 더한 'Chemise Dress' 라인을 선보여 그만의 쿠튀리에 기술을 널리 알렸다.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의 작품 중, 지금까지도 패션계에 자극을 주는 실루엣은 1950년대에 탄생했다. 전쟁이 끝나고 새로움을 찾는 고객들에게 그가 선보인 실루엣은 누가 보아도 기존에 없던 담대함과 새로움을 선사했다. 이 중에서도 코쿤 코트나 벌룬스커트 등 새로운 구조와 카테고리를 만들어낸 점은 그의 아카이브가 그 어느 브랜드보다 탄탄함을 알 수 있다.






1960년대에도 그의 디자인은 왕실과 유명 인사들의 사랑을 받았다. 벨기에 여왕 파비올라의 웨딩드레스를 선보이며 왕실 드레스를 만든 기록을 보유하고 있고, 1960년대 패션계의 여왕이자 영부인 패션의 교과서라 불리는 재클린 케네디의 드레스 역시 디자인했다.





화려한 명성과 풍부한 아카이브. 그리고 1930년대부터 60년대까지 이어져 온 새로움이라는 단어는 언제나 발렌시아가의 것이었다. 그렇기에 1968년,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의 갑작스러운 하우스 종료 소식은 패션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이러한 소식이 충격적이었던 이유는 브랜드 자체의 경영난이나 유행에 밀려난 이슈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1917년부터 68년까지. 약 40년을 넘게 파리 패션계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던 발렌시아가는 1968년 컬렉션을 마지막으로 긴 동면의 시간을 거친다. 이 기간 사이에 창립자인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는 1972년 사망하고, 브랜드가 다시 살아나는 데는 14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Jacques Bogart S.A 그룹은 1986년, 발렌시아가 브랜드를 인수하고 이들이 1940년대 선보인 향수 이름을 본 딴 "Le Dix"컬렉션을 선보인다. 해당 기간 동안 두 명의 디자이너 교체를 겪으며 발렌시아가 Balenciaga는 하이패션의 이미지를 만드는 데 공을 들인다. 그리고 1997년. 우리가 모두 알고 있는 발렌시아가 Balenciaga의 완벽한 재건은 니콜라스 게스키에르가 나타나면서 시작되었다.






니콜라스 게스키에르는 그 당시 패션계의 이름있는 명사가 아니었다. 발렌시아가의 라이센스 디자이너에 불과했던 그의 이름이 1997년 등장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흥미로움과 의심이 공존했다. 잊혀가던 브랜드와 이전 디자이너의 부진을 그가 극복할 수 있을지 많은 논란이 있었다.




이러한 논란을 잠재운 건 니콜라스 게스키에르의 컬렉션이었다. 발렌시아가 Balenciaga는 그의 컬렉션 이후, 본격적으로 잠에서 깨어났다는 평가를 들으며 패션계 화제의 중심으로 이동하는 데 성공했다. 그가 선보인 디자인은 지루하지 않았고, 새로운 실루엣을 제안했으며 혁신적인 소재와 디자인을 선보이는 동시에 크리스토발 발렌시아의 유산과 현대의 기술을 접목했다.







심플한 커팅을 강조한 미니멀한 드레스부터 풍성한 볼륨을 강조한 구조적인 바디수트에 화려한 패턴을 강화한 그의 컬렉션은 화제의 중심이 된다. 발렌시아가 Balenciaga. 정확히는 니콜라스 게스키에르가 부여하는 현대적인 아카이브에 관심을 가진 케링 Kering 그룹은 2001년, 브랜드를 인수하며 발렌시아가 Balenciaga의 현대 비즈니스의 토대를 세우는 데 주력한다. 2004년에는 남성 컬렉션을 오픈하며 새로운 소비 시장을 찾았다.






니콜라스 게스키에르의 발렌시아가는 케링 Kering 그룹 내 가장 이익률이 좋은 브랜드로 전에 없던 성장을 기록한다. 발렌시아가 Balenciaga의 완벽한 부흥을 이끌어낸 그는 2012년 브랜드를 떠나고 2013년, 루이비통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된다.



게스키에르가 떠난 빈자리를 3년 동안 이끈 디자이너는 미국 하이앤드 패션계의 신예 알렉산더 왕 Alexander Wang 이었다. 스포티한 아이템의 하이패션화에 능했던 그는 정제된 발렌시아가를 선보였지만 파급력은 예전보다 약했고 그는 3년 만에 하우스에서 물러난다.



2015년. 발렌시아가 Balenciaga는 대중을 술렁이게 만드는 특별한 선택을 발표한다. 바로 베트멍의 뎀나 바잘리아를 발렌시아가로 영입한 것. 해체주의와 스트리트 패션의 경계를 넘나드는 Vetements의 디자이너였던 그는 다른 세계관의 발렌시아가를 선보이면 폭발적인 반응을 얻는다.



니콜라스 게스키에르와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에게는 있었고 알렉산더 왕에게는 없었던 무엇. 그 무엇을 뎀나 바잘리아는 알고 있었다. 발렌시아가 Balenciaga는 과거의 유산에 기대는 브랜드가 아니었다. 새로운 실루엣과 스타일을 제안하는 '혁신'이 그들의 아카이브였던 것. 뎀나 바잘리아의 스트리트 패션이 가미된 그의 2017년 발렌시아가 데뷔 컬렉션은 평단의 찬반과 대중의 뜨거운 반응으로 시작되었다. 그가 선보인 파워 숄더 자켓과 어글리 슈즈, 스피드 러너 등 모든 아이템은 기존의 실루엣과 형태를 과감하게 무너뜨리며 화제가 되었다. 2017년 처음으로 진행된 남성 컬렉션 역시 어글리 슈즈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를 탄생시키며 발렌시아가 성장의 원동력이 된다.







뎀나 바잘리아의 발렌시아가는 기존에는 실험 수준에 그쳤던 발렌시아가 남성 컬렉션을 주요 라인으로 자리 잡게 했다. 이와 함께 여성 컬렉션의 소비자를 놓치지 않도록 스마트한 액세서리와 슈즈 라인업을 내세우며 힙한 브랜드의 이미지를 공고히 했다.





이들의 힙한 이미지는 SNS 커뮤니케이션에서도 자연스럽게 노출되며 '밀레니얼을 위한 럭셔리 브랜드'로의 완벽한 포지셔닝에 성공한다. 2019년에도 발렌시아가 Balenciaga는 구찌 Gucci, 보테가 베네타 Bottega Veneta, 생로랑 Saint Laurent에 이어 케링의 4대 브랜드로 불린다.





2020년, 그들의 새로운 성장동력은 50만에 부활하는 오트 쿠튀르 Haute Couture 컬렉션의 부활이었다. 케링 Kering 그룹의 새로운 성장동룍인 오트 쿠튀르 컬렉션은 에디 슬리먼을 통해 생로랑 파리의 오트 쿠튀르를 부활시킨 전력을 기초로 한다. 향후 패션 시장 역시 고급 의류에 치우치게 되는 점을 감안하여 이러한 전략을 기획하였고, 현재는 코로나 19 사태로 인해 런칭이 잠정 보류된 상태다.





1937년 파리에 첫 발을 내딛은 발렌시아가 Balenciaga. 이들의 역사는 긴 세월이 지나 뎀나 바잘리아를 통해 진정한 부활을 꿈꾸고 있다. 어글리 슈즈와 스피드 러너. 구조적인 실루엣의 자켓과 드레스를 선보였던 레디-투-웨어를 넘어 80년 넘게 잠들어 있던 발렌시아가 Balenciaga의 영광이 오트 쿠튀르로 어떻게 부활할 지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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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BY 임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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