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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edi Slimane의 CELINE

  • 2018년 1월, 조용했던 패션계의 포문을 연 자는 바로 에디 슬리먼 Hedi Slimane이었다. 2016년 생로랑을 떠난 지 2년 만의 셀린느로의 복귀다. 디올 옴므 Dior Homme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자신의 스타일을 확고하게 패션계에 알린 그의 복귀에 패션계는 환호하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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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조용했던 패션계의 포문을 연 자는 바로 에디 슬리먼 Hedi Slimane이었다. 2016년 생로랑을 떠난 지 2년 만의 셀린느로의 복귀다. 디올 옴므 Dior Homme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자신의 스타일을 확고하게 패션계에 알린 그의 복귀에 패션계는 환호하는 분위기다. 이번 발표로 그가 이룩한 패션계 커리어는 거의 그랜드슬램 수준인데, 에디 슬리먼은 이제 디올 그룹을 거쳐 패션계의 양대산맥인 LVMH와 Kering 그룹을 모두 석권한 셈이다.

디올 그룹에서 남성 라인인 디올 옴므 Dior Homme를 통해 전 세계에 '마른 남자 열풍'을 불러일으킨 에디 슬리먼. 그는 YSL에 입사하자마자 로고와 워딩을 생로랑으로 바꾸는 파격적인 시도와 함께, 퇴폐적인 남성과 여성성을 제안하며 여성라인까지 뛰어난 매출을 끌어올리는 데 성공한다. 케링 Kering 그룹 내 3대 브랜드로 불리는 구찌, 보테가 베네가와의 실적 비교에서도 생로랑의 성장으로 보테가 베네타의 하락을 메웠다는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였으니까. (2016년 상반기 매출 비교 시, 생로랑이 보테가 베네타를 따라잡은 수준까지 올라갔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그 정도의 파급력을 가진 에디 슬리먼이니, LVMH의 입성을 패션계에서 흥미롭게 바라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피비 필로과 에디 슬리먼, 스타 디자이너의 바통을 이어받다



에디 슬리먼의 셀린ㄴ Celine 입성과 함께 LVMH는 그와 함께 할 사업 방향까지 발표를 했다. LVMH 공식 보도자료에 따르면 그의 타이틀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넘어선 "Artistic, Creative and Image Director of Céline" 로 명시되어 있다. 단지 의상 뿐만 아니라 비주얼과 모든 크리에이티브를 총괄한다는 의미다. 거기에 셀린느 Celine는 에디 슬리먼과 함께 남성 라인/ 오트 쿠튀르/ 향수 사업까지 진행할 예정이라 그 범위가 매우 광범위 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한 디자이너를 믿고 패션 그룹에서 이 정도의 투자를 하는 일은 흔치 않다. 어마어마한 기회지만 그와 함께 전임자였던 피비 필로 Phoebe Philo 와의 비교 역시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일이다. 대중적인 럭셔리 브랜드는 아니였던 셀린느 Celine에 결정적인 아카이브를 구축한 피비 필로의 업적을 에디가 얼마나 유지하며 브랜드를 확장시킬 지가 관건인 셈이다. 생로랑처럼 셀린느 역시 피비의 색을 지워내고 전혀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갈 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지만.



에디 슬리먼의 LVMH 입성 계획은 언제부터 논의되었을까?





에디 슬리먼의 LVMH 그룹 입성은 하루 아침에 이뤄졌을 리는 없다. 그렇다면 패션계에서 가장 궁금해 할 다음 질문은 "언제부터 LVMH 그룹이 에디 슬리먼과 대화를 시작했는가?" 가 될 것이다. 이에 대한 답변은 그 누구도 하지 않겠지만, 전체적인 맥락 상으로 보았을 때 늦어도 2016년 하반기부터 연락을 취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를 추측할 수 있는 이유는 에디 슬리먼과 케링 Kering 그룹의 소송이 가장 큰 이유다. 


32016년, 갑작스러운 에디 슬리먼과 케링 Kering 그룹의 결별은 당시 패션계에 가장 뜨거운 감자 중 하나였다. 그 당시, 매출 고공행진을 기록하던 생로랑에서 에디 슬리먼이 나가야 할 이유는 없었기 때문. 이에, 업계에서는 디자이너와 패션 그룹의 불화를 예상했고, 이는 에디 슬리먼의 케링 Kering 그룹 소송으로 기정 사실화 되었다. 실제로 소송은 '동종 업계 이직 불가' 항목에 대한 내용이었지만, 아름다운 이별이었다면 이러한 소송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을거란 분석이 크다. 이 시점 전후로 LVMH 그룹과 손잡을 가능성을 염두해 두었다면 그가 소송이 필요했던 이유는 당연한 일이다.



 2016년 하반기부터 이 가능성을 염두해두었다는 사실을 점칠 수 있는 또 하나의 이유는, 피비 필로가 떠난다는 루머가 2017년 상반기부터 돌았기 때문이다. LVMH 그룹은 피비 필로를 셀린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데려오기 위해 많은 부분을 희생했고, 그녀 역시 기대만큼의 성과를 만들어냈지만 그 다음으로 나가기에는 어려운 점들이 많았다. 실제 피비 필로는 패션계에서는 드문 '워라밸'을 중시하는 디자이너 였고, 셀린느의 상승세를 더욱 크게 만들고 싶었던 LVMH 그룹과 많은 의견 충돌이 있었을거란 예상은 쉽게 할 수 있다. 


피비 필로를 이어 바통을 이어받을 수 있는, LVMH 그룹의 새로운 프로젝트를 이끌어 갈 수 있는 경험자. 그렇게 에디 슬리먼이 선택되었다. 



지금의 셀린느 Celine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모두가 동경하는 패션 하우스로 성장한 2018년의 셀린느 Celine를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브랜드가 지금처럼 승승장구만 하던 브랜드는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1945년 브랜드 설립자 Celine Vipiana와 그녀의 남편 Richard에 손에 파리에서 탄생한 셀린느는 어린이들을 위한 커스텀 슈즈 브랜드였다. 이 비즈니스의 성장을 통해 그들은 1950년 비즈니스를 핸드백, 레더 아이템, 향수, 실크 스카프 등으로 확장하게 된다. 






1960년대부터 70년대는 비즈니스를 레디-투-웨어로 확장하게 되고, 캐주얼 시크를 콘셉트로한 실용적이고 우아한 의상이 인기를 얻게되면서 일본과 이태리 등으로 브랜드를 확장시키게 된다. 이러한 폭발적인 성장세와 함께 셀린에서 선보인 블라존 체인 Blazon Chaine 로고는 로고 백의 유행과 맞물려 비즈니스를 더욱 화려하게 부상시켰고, 이러한 셀린느의 가능성을 엿본 LVMH 그룹은 1996년 최종적으로 브랜드를 LVMH 그룹으로 인수하게 된다. 







LVMH 그룹에 합류하게 된 셀린느 Celine은1997년, 1년만에 창립자의 죽음으로 새로운 디자이너 영입하게 된다. 그 주인공은 미국 디자이너 신드롬의 주역 중 한 명인 마이클 코어스. 그 당시 마크 제이콥스 Marc Jocobs와 함께 미국발 디자인 신드롬을 일으킨 주인공인 그는 셀린느를 실용적이고 우아한 스타일의 하우스로 업데이트한다. 이 시기를 셀린느 제 2의 전성기로 볼 수 있는데, 마이클 코어스는 그의 장기인 팔리는 아이템, 특히 액세서리와 백의 히트(잇백이라는 단어가 생기기 시작한 시대에 부기 Boogie 백을 탄생시긴 사람이 바로 마이클 코어스다) 를 만들어내며 브랜드의 셀링 파워를 증대시기는 공을 세우게 된다. 


창립자 사후에도 안정가도를 달리던 셀린느 Celine은 마이클 코어스가 떠난 2004년 이후부터 5년간 암흑기를 가진다. 이 시기를 거쳐간 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로버트 메니체티 (버버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출신)과 이바나 오마직 Ivana Omazic은 평단의 신랄한 비판 속에서 중심을 잡지 못하고 하우스를 떠나게 된다. 순식간에 LVMH 그룹의 골칫덩이로 전락한 셀린느 Celine이 지금의 셀린으로 변신하게 된 결정적인 순간은 2008년이다. 




피비 필로 Phoebe Philo, 셀린느 Celine의 새로운 역사를 쓰다






2008년 9월, LVMH는 피비 필로 (혹은 피비 파일로)를 셀린느 Celine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했다는 공식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클로에 이후 현실적인 옷에 목말라있던 여성들의 열광의 목소리가 패션계에 가득차기 시작했다. 그녀를 영입하기 위해 LVMH는 영국에 셀린느 본사를 이전했고, 브랜드의 모든 부분을 관할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했다. 이 정도의 파격적인 제안에는 셀린느 브랜드 자체를 재건축해야할 필요를 느꼈기 때문이다. 


피비 파일로는 <보그 코리아>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처음 도착했을 때 셀린느는 이렇다 할 아카이브도, 독창적인 DNA도 가지고 있지 않았어요. 나는 이 하우스를 재창조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흥분했습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새로 시작했죠. 지금 셀린느에는 우리가 집중하고 개선해 나가는 목적의식이 있어요. 내가 설명해야 할 모든 것은 이미 제품에 담겨 있고요. 나는 이 하우스가 신중하고 느긋하고 편안해지길 바랍니다.” 


그녀가 입성하기 전, 그녀의 말 그대로 셀린느는 독창적이지도, 역사가 깊지도 않았다. 브랜드의 매출은 바닥으로 곤두박질 치고 있었고, 전 세계 100개 매장 중 20개 매장을 정리한 상태였다. 전임자들이 남겨놓은 재고는 모두 소각해버렸다. 매출은 물론 그렇다할 아카이브도 가지고 있지 않았던 셀린느 Celine는 피비 필로를 통해 동시대 여성을 위한 '뉴 미니멀리즘'을 제안했다. 그녀가 컬렉션을 제안하자마자 패션계는 셀린다움 Celinisation 이라는 단어를 쓰기 시작했다. 






2008년부터 2018년까지. 셀린느 Celine는 피비 필로를 통해 새로운 정체성을 찾았다. 대중과 SNS에 휘둘리지 않으며, 차분하고 고요하게 현실적인 여성의 삶과 스타일을 제안하는 브랜드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했다. 직원들의 야근을 종용하지 않으며, 개인의 삶과 라이프스타일을 중시하는 피비 필로의 철칙에 따라, 하우스는 조용하고 간결하며 고도로 집중된 결과물을 선보이고 있다. 이러한 성장으로 LVMH 내 셀린느의 매출은 루이비통, 로로 피아나 다음을 차지하게 된다.




에디 슬리먼, 셀린느 Celine에서 무엇을 창조하는가?






피비 필로를 떠나보내고 에디 슬리먼을 영입한 LVMH 그룹. 그들의 목표는 매우 확고하다. 프리미엄 라인 집중과 향수 산업의 확장이다. 최근 몇 년간 LVMH 그룹은 루이비통을 통해 포트폴리오를 넓히는 작업을 진행했는데, 특히 주얼리 라인과 향수 산업에서 큰 재미를 보았다. 이러한 성공을 맛본 그룹이 셀린느 Celine를 통해 사업 확장을 꿈꾸지 않을 수 없는 셈이다. 게다가 셀린느의 아카이브에 향수 제품 Vent Fou가 있으니 이러한 전략적 결정은 스토리가 생기는 셈이다. 






LVMH가 셀린느 Celine을 통해 꿈꾸는 두 번째 사업은 바로 오트쿠튀르 라인이다. 럭셔리 산업을 공격할 때 항상 타깃이 되는 라인은 오트쿠튀르 산업이다. 현실 세계에는 존재하기 어려운 수공예 작업의 아이템을 선보이는 오트쿠튀르는 최근 레디 투 웨어의 매출이 중요해진 현 시점에 LVMH 그룹이 시도하는 브랜드 확장의 새로운 스텝으로 볼 수 있다. 실제 셀린느 Celine 의상은 아니지만 아이들을 위해 MTM 슈즈를 만들던 브랜드가 아니던가. 



에디 슬리먼은 이러한 LVMH의 전략을 모두 경험해본 커리어를 갖추고 있다. 직접적인 관여는 아니었지만 향수 사업을 가진 생로랑에서 잠시 접었던 오트쿠튀르 비즈니스까지 살려낸 인물이기 때문. 피비 필로가 창조한 셀린느의 '동시대 여성을 위한 패션'과는 흐름이 맞지 않는 방향이지만, 에디 슬리먼이 선보이는 오트쿠튀르 컬렉션을 보고 싶은 건 모두가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셀린느 Celine는 이제 창립자의 시대를 지나 마이클 코어스, 피비 필로를 거치며 변화했다. 셀린다움의 정의를 완료한 이 시점에 에디 슬리먼의 드라이브는 어디까지 브랜드를 성공적으로 확장시킬 지 주목되는 시점이다. 그 동안의 셀린느와는 또 다른 모습의 셀린느가 탄생할 거란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또한, 남성복 라인까지 넘보는 셀린느의 새로운 시도는 브랜드 전체를 새롭게 정의하는 거대한 프로젝트가 되는 셈이다.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에디 슬리먼이 거대한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게 된다면 그에게는 '패션계 그랜드 슬램' 을 넘어 '필러 브랜드의 플래그십 브랜드 확장자'라는 칭호가 붙게 될 것이다. 


그 행보는 2018년 9월에 공개된다. 벌써부터 그가 새롭게 선보일 셀린느 Celine 과 남성복이 기대되는 건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Editor. JA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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